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신 은혜

#주일설교

여전히 자비
호세아 2:1-7

1 네 아우 암미와 네 자매 루하마를 불러 사막 같게 하며 마른 땅 같게 하여 목마르게 하라 그를 영접한 자가 부끄러워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따르리라 하였으니 나를 사랑하고 내 빵과 물과 양모와 아마와 기름과 포도주를 주는 사람입니다.
” 그녀가 그들을 찾으면 찾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녀는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때가 지금보다 나았기 때문입니다.

소개

구약성경을 읽어보면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해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습니까?
둘째, 반복적으로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그 두 가지가 정말 놀랍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에게 두 가지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첫째, 우리를 애굽에서 건져내는 구원의 은혜(saving grace)를 주신다.

둘째, 가나안 땅에 와서도 계속해서 배반하고 우상숭배에 빠진다면 하나님께서도 죄를 짓지 않게 하시는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줄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을 죄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주는 은혜도 줍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나무로 그 길을 막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라”(호세아 2:6).
본문을 통해 가시와 담이라는 두 가지 상징적 말씀이 우리를 죄에 빠지지 않게 지켜주시는 은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I. 고멜의 죄와 호세아의 마음

첫째, 고멜의 죄는 순결을 지키지 못한 것입니다.

호세아 2장은 호세아의 아내 고멜의 죄와 그녀에 대한 호세아의 감정을 묘사합니다.
호세아 1장에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은 2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첫 아들을 낳고 이름을 이스르엘(하나님이 흩으실 것이다)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들은 Roruhama (나는 자비를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이름의 둘째 딸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셋째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로암미(내 아이가 아님)라고 지었습니다.

그런 아이가 있으면 잘 보살피고 남편과 가정을 꾸리며 정숙하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고멜은 우연히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완고한 고집”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말에는 “서양에서는 화를 내며 논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 속담처럼 고멜은 두어 번 다투고도 바람피우지 않고 화를 내며 돌아다녔습니다.
불굴의 의지와 집념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들의 어미들이 음행하며 잉태하여 부끄러운 일을 행하였으니 이는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사랑하여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과 내 삼과 내 기름과 포도주를 주는 자들을 내가 따르리라 하셨음이라” 호세아 2:5) ‘나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을 따르겠다’고 한 고멜의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고멜이 사랑한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속인 “바알과 아세라”를 상징합니다.

셋째, 바알 숭배와 농사 번창이 육신의 쾌락을 가져다 준다는 거짓말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속았습니다.

바알은 남신이고 아세라는 여신입니다.
바알 숭배자들은 성전 아래에 지역을 세웠습니다.
창녀들과 사람들은 그곳에서 음란한 일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으로 흥분하여 사랑에 빠지고 그 결과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비는 바알과 아세라의 사랑의 결과라고 믿었다.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가 비를 가져다준다고 믿었고 이것 덕분에 농작물이 번성하여 빵, 물, 양모, 대마, 기름, 포도주를 생산했습니다.
따라서 바알의 신전에는 항상 매춘부들이 있었고 바알의 신전에서의 예배는 성적 난잡함을 축는 것일 뿐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성적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바알 숭배에 빠졌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한 바알 숭배를 가증한 것으로 여기시고 여러 번 진노하셨습니다.

민수기 25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바알 숭배에 빠져 모압 여인과 음행하여 싯딤에서 24,000명이 염병으로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합 왕 시대에 선지자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 아세라 선지자 400명 등 850명과 영적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들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한 신을 참신으로 인정하기로 하였으나 바알과 아세라는 불을 내리지 못하여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예언자 850명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 숭배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알은 육신에 기쁨과 풍요를 가져다주는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쾌락과 풍요를 위함입니다.
고멜은 바알이 자기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신 분은 바알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빵과 물과 양털과 대마와 기름과 포도주를 주셨습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사랑하여 비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표에 따라 하나님께서 비를 내리십니다.
“내가 그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고 바알에게 쓴 은금도 그에게 더하였으되 그가 알지 못하더라”(호 2:8)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다 하나님이 주셨으나 그들은 알지 못하였다.

넷째, 고멜에 대한 호세아의 감정은 호세아 2장 2-4절에 나타나 있다.

“네 어머니와 싸우고 다투라. 그녀는 내 아내가 아니며 나는 그녀의 남편이 아닙니다.
그로 그 얼굴에서 음행과 그 젖가슴 사이의 음행을 제하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그를 벌거벗겨서 그가 태어난 날에 동등하게 하여 그것을 사막 같게 하며 마른 땅 같게 하고 갈증을 허용하여 목마르게 하십시오.

오늘날 많은 우상숭배자들이 우상에게 돈을 줍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헌금을 많이 거둔다고 나무라지만, 교회는 헌금으로 선교를 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신 것을 우상으로 삼는다.
생각해보세요. 남편이 가족을 위해 중동에 가서 열심히 돈을 보내고 아내가 그 돈으로 바람을 피운다면 남편은 얼마나 잃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과 금을 우상에게 가져다가 우상숭배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이러하셨을 것입니다.

호세아 2장 2~4절에 고멜이 음행을 버리지 아니하면 그 날을 벌거벗은 날과 같이 하여 황무지 같게 하여 그 자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은 이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 우상을 섬긴다면 결국 다 죽게 될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끝은 사망과 지옥입니다.

II. 가시덤불의 은총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죽음의 길에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은 가시와 담입니다.

양치기를 위한 가시와 울타리
첫째, 외부 공격으로부터 적을 보호하기 위해
둘째, 안에서 짐승이 나오는 것을 막는다.

이와 같이 가시와 울타리는 보호와 예방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수행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나무로 그 길을 막고 담을 쌓아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 그가 사랑하는 자를 좇을지라도 닿지 못하며 찾아도 만나지 못하리라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낫다고 하라”(호세아 2:6-7).
욥기 1장에서 사탄이 여호와 앞에 나타났을 때 하나님은 사탄에게 질문하셨습니다.
“어디서 왔니?” 그러자 사탄이 “나는 땅 위를 옮겨 다녔다” 하고 대답하자 하나님은 사탄에게 욥을 자랑하시며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였느냐? 그러자 사탄은 거기서부터 욥을 참소하기 시작합니다.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에 울타리를 두르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그 일을 이루게 하셨음이니라”(욥 1:9-10).
하나님께서 욥의 사업 주위에 보호 울타리를 두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울타리를 두르고 복을 받고 잘 지내고 있기 때문에 욥은 그가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올해도 하나님께서 모든 식구들의 가정과 사업과 영혼을 감싸시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 경상도 안동에서 금은방을 운영했는데 강도 4명이 들어왔다.
딸과 아내를 벗고 몸을 묶은 후 돈을 주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서 1400만 원 쓸 때 여기저기 찾아보고 금은 하다가 1400만 원밖에 없냐고 했는데 감사패를 발견했다.
감옥에서 백성들을 위해 일하신 정창근 장로님의 표창패였습니다.
금은방 주인은 정창근 장로에게 선물을 증정하고 감사패를 받았다.

그러나 강도는 표창패를 보고 정창근 장로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내가 안다고 했더니 도둑 4명이 정창근 장로님을 안다고 해서 건드리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1400만 원은 안 받겠다며 사라져 정창근 장로님 작품에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다.
결국 4명의 강도는 감옥에 있는 동안 정창근 장로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그로부터 표창을 받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이처럼 하나님이 믿는 자의 집에 담장을 두시면 아무리 도둑이 들어와도 나가는 일이 아무 탈 없이 이루어집니다.

가시와 울타리는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합니다.

22번은 예방 울타리의 예입니다.

말씀을 보면 발람이라는 거짓 선지자가 보입니다.
그는 모압 왕 발락에게서 뇌물을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발람의 나귀가 갑자기 밭으로 들어왔습니다.
발람은 당나귀를 쳐서 길로 가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발람이 길 가에 있는 담을 발로 밟아 발람의 발을 다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발람이 다시 나귀를 치자 이번에는 나귀가 앉았다.
발람이 다시 쳤고 하나님은 나귀 입을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당나귀지만 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천사가 칼을 들고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봅니다.

물론 조금 더했지만 당나귀가 발을 벽에 대고 발람의 길을 막았습니다.

그래서 울타리는 우리 성도들의 죄로 가는 길을 막는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가시와 울타리는 두 가지 기본 기능을 수행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보호하고 죄를 짓지 않도록 방지합니다.

III. 가시와 벽을 세우는 궁극의 목적

첫째, 우상숭배로 인해 우리의 형편이 비참해진 현실을 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시와 담을 두신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좇아도 만나지 못하고 찾아도 만나지 못하고 이르되 내가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내 형편이 그 때보다 나았음이라 지금’”(호세아 2:7).

고멜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가다가 가시에 찔렸고, 바알과 아세라를 따라가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위대한 선지자인 남편과 자녀들을 버리고 바알과 아세라를 사랑하는 사람을 따랐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이 비참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우상을 경배하셨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제하셨습니다.
하늘이 땅을 응하지 않고 땅이 곡식을 응하지 않도록 지었다.
땅이 하늘에게 비를 구하여도 주지 아니할 것이요 곡식이 땅에게 물을 구하여도 주지 아니하리라.

상황이 너무 비참해졌습니다.
상황이 비참해지자 그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그녀가 남편인 호세아 곁에 있을 때 남편에게 돌아가서 적어도 상황은 나아졌다고 말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잘 알 수 있듯이 탕자는 자신의 형편이 너무 비참하여 상속 재산을 가지고 나왔을 때 정신을 차리고 모든 것을 낭비하고 돼지 사료로 사용되는 열매를 먹었습니다.
아버지 집 일꾼들도 자기보다 형편이 낫다고 했고, 아버지 집에 일꾼으로 돌아가 밥을 사먹기로 했다.

둘째, 진리 안에서 하나님께 돌아가는 “적극적인 회개”를 하게 하십니다.

탕자와 고멜은 돌아갈 생각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죄와 우상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만 해서는 안 됩니다.
꼭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회개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받아주십니다.

남편 호세아는 고멜이 돌아왔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몸을 더럽힌 게 무슨 부끄러운 일이냐”며 거칠게 대하지 않았다.
호세아는 돌아온 탕자를 조건 없이 받아들인 것처럼 고멜을 다시 데려갔습니다.
호세아가 고멜을 받아들인 것처럼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고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을 받아주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를 고쳐 광야로 인도하며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부터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그에게 주리니”(호 2:14-15) )

그는 당신의 말로 당신을 위로합니다.
말씀으로 훈계하고 위로하시며 모든 것을 회복시키십니다.

불필요한 포도원을 등록하여 내 포도원으로 지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골 골짜기에서 “소망의 문”을 여십니다.
아골 골짜기는 여호수아 7장에 나오는 아이성 전투에서 아간과 그의 가족들이 모여들어 돌에 맞아 죽은 곳입니다.

고통과 슬픔의 자리에 희망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아골 골짜기와 같이 우상을 섬기며 고난을 당하는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로 돌아갈 생각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돌아가십시오.
고멜뿐인가요? 이스라엘뿐인가?
우리가 탕자같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내가 하나님께 돌아가면 아골 골짜기도 소망의 문이 되고 슬픔이 내게는 춤이 되리라.
그리고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십니다.
우상에게 기도하면 우상이 들어줄까요? 우상은 기도에 응답하는 능력이 있습니까?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의 주인이신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그 날에 내가 응답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답하고 하늘이 땅에 응답하고 땅이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답할 것이요 이것들도 응답하리라 이스르엘”(호 2:21-22).
하나님은 하늘에 응답하여 구름을 주고, 하늘은 땅에 응답하여 비를 주고, 땅은 곡식, 포도주, 기름에 응답하여 모든 필요를 공급합니다.

졸업 증서

유교, 불교, 선교, 샤머니즘은 한국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명절이면 제사를 지내고, 이사를 가는 날이 주어지고, 결혼이나 시집가는 아이들과 작별하는 날도 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겼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우리를 벌거벗겨 광야와 같이 만드실 것이며 결국 우리는 목마름으로 죽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유는 쾌락과 물질의 유혹 때문입니다.
그러나 쾌락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물질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상숭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소망의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 영생의 길에서 인내하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가 잘했다고 해서 의인이 되었다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간증을 해도 잘했다고 하나님이 복 주신다고 하지 말고 다 하나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한 것이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잘했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의와 거룩함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막고 보호하시는 은혜의 울타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자랑을 하지 말라 우리는 우리의 교만과 의로움과 거룩함을 나타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것은 주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우리가 가진 축복이 무엇이든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